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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질 때, 나는 내 안의 공허함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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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량미
댓글 0건 조회 341회 작성일 25-05-1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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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습니다.
출근 준비하느라 분주한 아침도 없고, ‘오늘은 어디 가세요?’라는 아내의 인사도 없어졌죠.
사실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그 말을 들을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3년 전, 정년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졸업’한 날부터요.

그때까지만 해도 마냥 후련할 줄 알았습니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했고, 책임감과 압박감 속에서 한 해, 또 한 해를 버텼으니까요.
"이제 좀 쉬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출근 가방을 치우고, 옷걸이 위에 정장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다음 날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 텅 빈 거실,
식탁 위엔 어제 저녁 남은 반찬들.
커피포트를 올려놓고 나도 모르게 벽시계를 바라봅니다.
9시…
예전 같았으면 회의에 들어갈 시간이죠.
이제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들어설 회의실도 없습니다.

하루는 어찌저찌 보내도,
문제는 그 하루가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는 겁니다.
TV를 보다가, 인터넷을 하다가, 소파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저녁이고, 방 안은 어둡고,
시간은 흐르는데 나는 가만히 멈춰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저를 보며 아내는 말하더군요.
“당신은 은퇴했지, 끝난 게 아니야.”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끝난 건 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감각이었습니다.

직장이 내 자존감의 전부였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 부장님", "○○ 이사님"이라 불리며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내 이름 석 자로 존재해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순 없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동네 도서관 자원봉사를 시작해봤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조용히 책 정리하는 일도 좋고,
가끔 아이들 책 찾아주는 일도 뿌듯했습니다.
누군가 내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주는 그 한마디에
하루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시작이라는 말,
지금은 그 말이 조금 이해됩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작은 다이어리에
그날 하고 싶은 일을 한 줄씩 씁니다.
‘책 30쪽 읽기’, ‘집 앞 공원 걷기’, ‘김밥 한 줄 싸기’
작은 목표지만, 그걸 해냈을 때의 만족감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리고 그 목표 중 하나가 이 글을 써보는 것이었어요.
혹시 저처럼 은퇴 후 하루가 길고,
시간의 공허함에 마음이 무너지는 분이 계신다면,
우리 함께 그 시간을 조금씩 채워나가 보면 어떨까요?

일을 떠나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자신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법—
우리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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