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적당히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세요?
페이지 정보

본문
나는 요즘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매달 250만 원 정도 버는 소박한 직장인이 있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20년 된 중고차로 명절에 본가에 다녀오고, 집은 월세지만 깨끗하고 따뜻한 원룸. 퇴근 후에는 동네 공원 걷고, 주말에는 반찬 만들어두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제주도에 여행 가는. 딱 그 정도의 삶. 무리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근데 그게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
일단 집. 월세는 계속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른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보증금 1000에 월세 58만 원이었는데, 올해 갱신하겠다고 하니 주인이 7만 원 올려달라고 했다. "다 올랐어요, 요즘 이 동네 이 가격엔 못 구해요"라는 말이 덧붙는다. 나는 협상도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했다.
다음은 식비. 예전엔 1인 가구 식비 3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50만 원은 그냥 넘긴다. 라면, 김치찌개, 계란후라이 돌려막기하면서도 이상하게 매달 카드값은 비슷하다. 편의점은 쳐다도 안 보고, 장도 시장에서 보는데도 그렇다. 마트에 가면, 수박 하나에 만오천 원이고, 양파 3개에 4천 원이다. 뭐가 정상인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병원. 지난달엔 목이 계속 아파서 이비인후과를 갔다. 진찰 2분, 약 3일 치 처방. 그런데 1만 5000원이 훌쩍 넘었다. 약국까지 포함하면 거의 2만 원.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재진료를 받았더니 추가로 또 1만 원. “감기 정도는 참고 넘기지” 하는 이유가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 때문이다.
교통비도 부담이다. 요즘은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타게 됐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요금이 300원 싸기 때문이다. 통근 시간은 더 걸리지만, 300원×20일×2회… 생각하면 꽤 큰 금액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스스로를 계속 합리화하고, 내 시간을 절약하기보다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삶이 기울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끔 "그렇게 힘들면 더 벌면 되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더 번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희박한 확률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야근 수당 따로 없는 중소기업에선 정시 퇴근이 복지고, 2년 차 연봉 50만 원 오른 걸로 감사해야 하는 구조다. 부업을 해보려 해도 체력은 바닥나 있고, 뭐 하나 배워보려 하면 그마저도 수강료가 10만 원이 넘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해도 카드값이 80만 원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뭔가가 빠져나간다.
요즘엔 정말 ‘버티는 삶’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월급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잠깐 기분이 좋아지지만, 이틀만 지나면 각종 자동이체에 밀려 잔고는 다시 바닥이다. 그리고 남은 20일을 다시 계산기로 두드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더 벅차다. 가족에게 말하면 걱정하실까 봐 숨기게 되고, 친구들에겐 자존심 때문에 티를 못 낸다. SNS에는 그저 “요즘 바쁘다, 잘 지내고 있다”는 글만 남긴다. 정작 내 마음속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세대는 유난이라고. 너무 예민하고, 너무 쉽게 지치고, 너무 힘들다고 징징댄다고. 하지만 그 ‘유난’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안다면, 그런 말 쉽게 못 할 거다.
적당히 살고 싶었다. 큰 욕심 없었다. 그저 월세 걱정 안 하고, 치킨 한 마리 먹을 때 눈치 안 보고, 여름에 에어컨 켜면서 전기세 걱정하지 않고, 감기 걸리면 병원 갈 수 있는 정도. 그런데 그 ‘적당히’조차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물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을 수 있을까. 이 삶이 언젠가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게 되길 바라며.
근데 그게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
일단 집. 월세는 계속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른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보증금 1000에 월세 58만 원이었는데, 올해 갱신하겠다고 하니 주인이 7만 원 올려달라고 했다. "다 올랐어요, 요즘 이 동네 이 가격엔 못 구해요"라는 말이 덧붙는다. 나는 협상도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했다.
다음은 식비. 예전엔 1인 가구 식비 3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50만 원은 그냥 넘긴다. 라면, 김치찌개, 계란후라이 돌려막기하면서도 이상하게 매달 카드값은 비슷하다. 편의점은 쳐다도 안 보고, 장도 시장에서 보는데도 그렇다. 마트에 가면, 수박 하나에 만오천 원이고, 양파 3개에 4천 원이다. 뭐가 정상인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병원. 지난달엔 목이 계속 아파서 이비인후과를 갔다. 진찰 2분, 약 3일 치 처방. 그런데 1만 5000원이 훌쩍 넘었다. 약국까지 포함하면 거의 2만 원.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재진료를 받았더니 추가로 또 1만 원. “감기 정도는 참고 넘기지” 하는 이유가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 때문이다.
교통비도 부담이다. 요즘은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타게 됐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요금이 300원 싸기 때문이다. 통근 시간은 더 걸리지만, 300원×20일×2회… 생각하면 꽤 큰 금액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스스로를 계속 합리화하고, 내 시간을 절약하기보다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삶이 기울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끔 "그렇게 힘들면 더 벌면 되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더 번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희박한 확률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야근 수당 따로 없는 중소기업에선 정시 퇴근이 복지고, 2년 차 연봉 50만 원 오른 걸로 감사해야 하는 구조다. 부업을 해보려 해도 체력은 바닥나 있고, 뭐 하나 배워보려 하면 그마저도 수강료가 10만 원이 넘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해도 카드값이 80만 원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뭔가가 빠져나간다.
요즘엔 정말 ‘버티는 삶’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월급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잠깐 기분이 좋아지지만, 이틀만 지나면 각종 자동이체에 밀려 잔고는 다시 바닥이다. 그리고 남은 20일을 다시 계산기로 두드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더 벅차다. 가족에게 말하면 걱정하실까 봐 숨기게 되고, 친구들에겐 자존심 때문에 티를 못 낸다. SNS에는 그저 “요즘 바쁘다, 잘 지내고 있다”는 글만 남긴다. 정작 내 마음속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세대는 유난이라고. 너무 예민하고, 너무 쉽게 지치고, 너무 힘들다고 징징댄다고. 하지만 그 ‘유난’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안다면, 그런 말 쉽게 못 할 거다.
적당히 살고 싶었다. 큰 욕심 없었다. 그저 월세 걱정 안 하고, 치킨 한 마리 먹을 때 눈치 안 보고, 여름에 에어컨 켜면서 전기세 걱정하지 않고, 감기 걸리면 병원 갈 수 있는 정도. 그런데 그 ‘적당히’조차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물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을 수 있을까. 이 삶이 언젠가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게 되길 바라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