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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3개월, 정말 괜찮아지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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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량미
댓글 0건 조회 95회 작성일 25-05-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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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말,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아니 이 시국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도 퇴사하는 당일 아침까진 수십 번을 고민했죠. 5년 넘게 다닌 회사였고, 월급도 밀린 적 없고, 조직도 작은 회사치곤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오늘도 출근해야 하네…”였거든요. 진심으로 숨이 턱 막혔습니다.

당시의 저를 되돌아보면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별 일 아닌데 예민해지고, 아무 말도 아닌데 눈물이 나고, 출근 시간 5분 전엔 진심으로 토할 것 같고. 어느 순간부터는 슬프다기보다는 무감각해졌어요. 웃고 싶어도 표정이 안 지어졌고, 회사 사람들이 말 거는 것도 귀찮았죠. 제가 보기엔 다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위축됐습니다. “왜 나만 이럴까?”

그렇게 2024년을 맞이하자마자 사직서를 냈어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더는 그 공간에서 버틸 수 없었으니까요. 팀장님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며 회유하셨지만, 이미 저는 마음속으로 열두 번은 회사를 떠났던 사람이라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퇴사하고 나니 처음 며칠은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알람 맞출 필요도 없고, 월요일이 두렵지도 않고, 아침에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더라고요. 이게 사람이 사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정말 잘한 결정 같아!”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조금씩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소속’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더군요. 누구를 만나든 “요즘 뭐해?”라는 질문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쉬고 있어”라고 대답하면 “어디 쉴만한 데라도 다녀왔어?”라는 질문이 이어지고, 그다음엔 “이제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이 날아오죠. 저는 아직 계획이 없는데 말입니다.

주변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승진을 했고, 회사 동료는 결혼을 준비했고, 어떤 후배는 자기 명의의 차를 뽑았더군요. SNS를 보면 모두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나만 정지되어 있는 느낌.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지금 뭘 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늦잠을 자고, 밥 먹고, 운동하고, 책 읽고, 글 쓰고… 다 좋은 건데, 막상 ‘앞으로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할 수 없어요. 이게 진짜 쉼인지, 아니면 도망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 돈. 월급이 끊기니 소비에 엄청나게 신중해지더군요. 커피 한 잔, 배달 음식 하나에도 고민하게 되고, 통장 잔고를 수시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러다가 몇 달 뒤엔 진짜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거 아닐까?”라는 불안이 점점 커져요.

그래도 하나 좋은 건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살았다면, 요즘은 적어도 ‘살아가는’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시간이 많아지니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엔 꿈도 못 꾸던 평일 낮 영화관 나들이를 다녀왔고, 혼자 국립중앙박물관에도 갔어요.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앉아 책을 읽기도 했고요. 그런 시간이 꼭 생산적이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평화롭고 좋았습니다.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조심스럽게 품어봅니다.

사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저처럼 퇴사 이후의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분들이 있을까 봐서예요.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나도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너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셨다면, 그 마음 백 번 공감합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기분, 주변의 시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저도 매일 느껴요. 그런데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예전처럼 웃고, 예전처럼 나답게 행동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하루를 조용히 보냅니다.

퇴사 후 3개월, 아직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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