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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 나는 오늘도 무표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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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량미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5-05-1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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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은 매일 똑같다. 아침 8시 15분. 우리 동네역에서 타면 이미 앉을 자리는 없다. 중간쯤부터는 사람들로 꽉 차서 누군가의 팔꿈치, 가방끈, 어깨에 계속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항상 오른쪽 문 앞에 서는데, 거기가 가장 덜 밀리는 자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조차도 오늘은 유난히 꽉 막힌 것 같았다.

나는 서 있고, 주변 사람들도 서 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인데, 아무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그 중간에서 나도 내 자리만 지키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때, 바로 내 앞에 서 있던 한 여자가 갑자기 휘청하면서 나한테 기대듯이 넘어졌다. 당연히 무게 중심을 잃고 내 어깨에 머리가 닿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으로 그 여자가 넘어지지 않게 받쳐줬다. 순간 놀랐지만, 다친 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조용히 “죄송해요” 하더니 다시 제자리로 섰다. 그 짧은 순간, 우리 둘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묘한 웃음이 번졌다.

말도 없고, 설명도 없고, 그냥 그 짧은 순간에 “괜찮아요”라는 말이 눈빛으로 전달됐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봤지만, 사실은 방금 그 상황이 자꾸 떠올랐다. 어쩌면 이 도시에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우연한 접촉’ 이상을 나눈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사람과의 접촉이 참 조심스럽다. 어깨가 스쳐도 민감하고, 눈이 마주쳐도 피하게 되고, 누군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 그건 더 심해졌다. 마스크 뒤에 숨은 표정들, 거리 두기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워진 일상. 그 모든 게 우리를 점점 더 ‘무표정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출근길만 그런 게 아니다. 회사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말 없이 지나치고, 말 없이 계산하고, 말 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흐릿해진다.

예전엔 아침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외치던 가게 아주머니가 계셨다. 지금은 그 가게도 사라졌고, 그런 인사도 듣기 힘들다. 모두 바쁘고, 예민하고, 피곤한 얼굴이다. 내가 그렇게 보인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됐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그 짧은 웃음이 오래 남는다. 그건 진짜 웃음이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당황한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웃음. 아, 사람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었다. 이 복잡하고 빠른 도시에 살면서도 우리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

나는 그 여자를 모른다. 이름도, 어디서 내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 하루 그 짧은 순간 덕분에 내 출근길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도 무표정하게 웃었지만, 그건 가짜 웃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회사에서. 말 한마디, 눈빛 하나, 가벼운 미소 하나로도 누군가의 하루가 바뀔 수 있다면, 그건 생각보다 큰 일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단절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사실 아주 작은 연결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따뜻해질 수 있다. 오늘 아침, 그 사람과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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